찾다

채수빈
출연진 · 나를 충전해줘으로 알려져 있음
2013년 11월 29일에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을 통해 배우로서 데뷔했다. 데뷔 초기에는 많은 CF를 통해 얼굴을 알렸다. 2014년 광고계의 블루칩으로 급부상하면서 2015년까지 2년만에 무려 13편의 광고에 등장했다. 이후 MBC 단막극 《원녀일기》와 KBS2 미니시리즈 《스파이》를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았으며, 떠오르는 신인 배우로 주목받았다. 2015년 KBS2 드라마 《파랑새의 집》에서 한은수 역을 통해 주연급 배우로 발돋움하게 된다. 연기 활동을 시작한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신인 배우가 주말 드라마 주연으로 발탁된 파격적인 캐스팅이었다. 이후 탄탄한 연기력을 인정 받아 에이판 스타 어워즈, KBS 연기대상 여자 신인 연기상을 수상했다. 데뷔 초기부터 연기력 논란 없이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세간의 호평을 받았다. 신인 시절 드라마에서 채수빈이 맡았던 배역 중 《파랑새의 집》의 한은수 역과 《발칙하게 고고》의 권수아 역은 서로 완전히 상반되는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안정적으로 각기 다른 배역을 소화해냈다.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로는 새로운 작품을 들어갈 때마다 해당 캐릭터의 입장이 되어 일기를 쓴다고 한다. 2016년 KBS2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조하연 역을 연기했고, 곧이어 연극 《블랙버드》에 우나 역으로 출연하였다. MBC 드라마 《쇼핑왕 루이》에 특별출연하였으며, 2017년 MBC 사극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에서 가령 역을 연기하면서 2연속으로 사극 연기를 이어갔다. 드라마 역적 이후에도 KBS2 드라마 《최강 배달꾼》에 단아 역으로 출연한 가운데, 이전 은수나 가령 역과는 상반된 매력을 보여주었다. 같은 방송사의 드라마 스페셜 《우리가 계절이라면》에 출연한 데 이어, MBC 드라마 《로봇이 아니야》에서는 인간 조지아와 로봇 아지3로 1인 2역을 맡기도 했다. 2017년에만 네 편의 드라마에 출연하였고, 그 해 MBC 연기대상 여자 우수 연기상을 수상하면서 라이징 스타로 주목받았다. 2018년 SBS 드라마 《여우각시별》에서 한여름 역을 맡아 SBS 드라마에 첫 출연하였다. SBS 드라마 첫 출연과 동시에 연기력을 인정받아 SBS 연기대상 여자 우수연기상을 수상하였다. 2019년에는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에 홍현아 역으로 출연한 가운데,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에 콘스탄스 역으로 출연하였다. 2020년에는 첫 tvN 드라마로 《반의반》에서 한서우 역으로 출연했고, 2020년 12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앙리할아버지와 나》에 콘스탄스 역을 다시 연기하였다. 2021년 6월 코로나로 인해 개봉이 연기되다가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새콤달콤》에서 정다은 역으로 출연하였다. 2022년 1월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에서 해금 역으로 출연하였으며,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 《너와 나의 경찰수업》에서 고은강 역으로 출연하였다. 고은강 역을 맡아 경찰대학교 신입생으로 완벽히 변신한 것은 물론, 탄탄한 연기력으로 캐릭터의 성장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이후 2022년 12월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패뷸러스》 의 주연 표지은 역으로 출연하면서 영화와 연극, OTT를 넘나들며 활발한 연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23년 1월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비올라 역으로 출연하였다. 비올라 역을 맡아 몰입도 높은 연기력을 보여주면서 2023년 인터파크 연간 연극 예매율 1위를 기록하는 것은 물론, 관객평점 9.6을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연극을 마무리했다. 2023년 2월에는 영화 《하이재킹》에서 이옥순 역을 맡아 촬영을 마쳤으며, 2024년 6월에 개봉했다. 2024년 5월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에서 유상아 역을 맡아 촬영을 마쳤으며, 2025년 개봉 예정이다. 2024년 11월 MBC 금토 드라마 《지금 거신 전화는》에서 수어 통역사 홍희주 역을 맡아 대사 없이 수어로 소통하는 난이도 높은 연기를 선보이며 드라마는 넷플릭스에서 33개국 1위, 비영어 2위, 글로벌 TV쇼 부문 4위, 전체 5위에 오르는 등 높은 화제성을 기록하면서 전세계적으로 흥행했다. 회를 거듭할수록 감정선이 깊어지는 가운데 몰입도 높은 연기력을 보여주면서 MBC 연기대상 미니시리즈 부문 우수 연기상과 베스트 커플상을 수상했다.

카를로스 아우구스토 스트라저
카를로스 아우구스토 스트라저는 브라질의 배우, 가수, 연극 프로듀서, 연출가였습니다. 그는 Fernando Arrabal 의 Cemitério de Automóveis 를 포함한 여러 연극에 참여했습니다. 장 제네의 작품 '발코니'는 빅터 가르시아가 감독하고 루스 에스코바르가 제작한 작품이다. 호르헤 안드라데의 '모라토리엄' 1980 년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가장 큰 히트를 친 뮤지컬 '에비타' 그리고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Les Liaisons Dangereuses 는 그 10 년의 마지막에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Rede Globo, TV Tupi, Rede Manchete, TV Bandeirantes, TV Record 등에서 많은 연속극과 몇몇 미니시리즈에 출연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졌습니다. 그는 우아함과 모호함을 불어넣은 악당이나 신비롭고 신비로운 캐릭터를 연기한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티즈카 야마사키 감독의 《가이진 - 자유의 길》 (1980) 등 몇몇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레온 히르츠만의 1981 년작 《그들은 검은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 실례합니다. 싸우러 갑니다 (1986), 작성자: Lui Farias 및 Mystery at Colégio Brasil (1988), 작성자: José Frazão; 폴 마주르스키가 감독한 국제 작품 Moon Over Parador (1987) 에 특별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안드레아 토나치가 감독한 다큐멘터리 '더 많이 해석하면, 더 많이 알게 된다'는 루스 에스코바르 극단의 일상 생활을 다룬 작품으로, 법원에서 20년간 상영이 금지되었던 작품입니다. 그는 1993 년 에이즈로 인한 호흡기 합병증으로 46 세의 나이로 2 월 19 일 오전 3 시 15 분에 자택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는 리우데자네이루의 상 조앙 바티스타 묘지에 묻혔습니다.

오드리 헵번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여배우 중에서도 오드리 헵번은 절대 타락할 수 없는 마음을 가진 연약한 성인(聖人)이며, 다치기 쉬워 보이나 또한 섬세한 우아함까지 지녔다. 여려 보이지만 결코 압력에 짓눌려서 무너지는 법이 없었고 연기생할에서 은퇴하여 유니세프의 어린이를 위한 대사가 되었을 때(그때는 아직 유명인들의 자선 활동이 유행하기 전이다) 얼마나 확고한 몰두와 헌신으로 그 일을 해내었던지 완고하고 무감각한 정치인들에게까지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국제적 외교사절이라는 직업은 그녀의 인생과 연기 경력의 논리적인 완결이었다. 헵번은 진정한 세계주의자의 원형이었다. 브뤼셀에서 네덜란드인과 영국의 아일랜드인 부부(어머니는 여남작이었고 아버지는 은행가였다) 사이에 태어난 그녀는 벨기에와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자랐고 2차 대전 동안 나치 점령 하에서 지냈다. 나치 치하에서 너무나 심한 고난을 목격했기 때문에 「안네의 일기(1959)」의 캐스팅 제안을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후에 그녀가 거식증으로 고생한 것도 전쟁 동안 겪은 영양실조 때문이라는 주장도 종종 있었다. 언젠가 그녀는 전쟁 동안 튤립 구근을 먹었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헵번은 암스테르담에서 모델로 활동하다가 파리와 런던에서 단역들을 맡으며 연기 생활을 시작했고(가장 눈에 띄는 출연작은 「라벤더 힐 몹(1951)」), 그러다가 1953년에 로마에서 로케이션 촬영으로 만든 윌리엄 와일러의 「로마의 휴일」에 공주 역으로 캐스팅되었다. 「로마의 휴일」은 암스테르담을 비롯한 유럽의 몇몇 도시들에서의 그녀의 멋진 모습을 담은 화면들을 포함시키면서 그녀의 코스모폴리탄적 배경을 잘 활용했고 영화가 끝날 무렵 그녀는 기자 회견 장면에서 네덜란드어로 몇 마디를 말하면서 그녀의 뿌리가 유럽에 있음을 멋지게 드러냈다(헵번은 다섯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고 이 재능은 후에 그녀의 인도적 활동에 큰 도움이 되었다). 「로마의 휴일」의 성공은 헵번을 순식간에 세계무대로 도약하게 했고 겨우 스물네 살의 그녀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곧 1954년에는 「운디네」로 토니상(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까지 받았다. 나날이 커져가는 그녀의 명성은 베이비붐 세대 여성들의 변치 않는 사랑을 받았고 그들은 그녀를 현대적인 젊은 여성의 역할 모델로 삼았다. 네덜란드와 벨기에와 영국의 언론들은 서로 헵번이 자신들에게 속한다고 주장하려 애썼지만, 이제 그녀가 전 세계에 속한 사람이란 것은 분명해져 있었다. 이후 헵번의 영화 경력은 길지도, 그렇다고 특별히 집중적이지도 않았지만—그녀는 1953년부터 1967년 사이에 겨우 15가지의 주요 역할을 맡았을 뿐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일관성을 지니고 있어서 영화계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통일성을 구축하고 있다. 헵번이 영화에서 연기한 역할들은 모두 어떤 식으로든 교육과 관련된 것이었다. 「로마의 휴일」에서도 그녀가 여유로운 기분전환을 위해 엄격한 교육에서 달아난 것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상대역 그레고리 펙이 여전히 그녀에게 세상의 방식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와 유사하게 그녀의 가장 성공적인 작품들인 「사브리나(1954)」와 「파계(1959)」, 「아이의 시간(1961)」,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 그리고 「마이 페어 레이디(1964)」를 보면 그녀가 연기한 인물들의 매력이 언제나 교육과 노력과 적절한 예의범절과 관련되어 있음이 강조된다. 헵번이 모든 교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라는 사실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할리우드 스타에서 국제적인 외교사절로 1958년에 그녀는 자신이 브로드웨이에서 그 인물을 창조해 내는 데 일조했던 「지지」의 영화판 주연 캐스팅을 거절했다(그 역은 프랑스 태생의 여배우 레슬리 카론에게 갔다). 1960년대 후반부터 헵번은 점점 연기에서 멀어져 국제적인 외교의 세계로 깊숙이 들어가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에서 유니세프와 함께 활동했다. 그 일을 얼마나 유능하게 해내고 또 그로 인해 큰 존경을 받았는지, 그녀가 (1993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몇 년 전) 마지막으로 출연한 영화인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혼은 그대 곁에(1989)」에서 신의 역을 연기한 것이 전혀 젠체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놀랄 일도 아니지만 그녀는 진짜 천사처럼 상대를 무장해제시키는 위트와 매력으로써 그 역할을 연기해 냈다. 이 깜찍한 여배우는 두 번 결혼했다. 배우 멜 페러와 닥터 안드레아 도티가 그 상대였고 그들에게서 각각 아들 한 명씩을 낳았다. 1990년에 튤립의 한 품종이 그녀의 이름을 물려받았다. 앙증맞은 검은 드레스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홀리 고라이틀리는 그 드레스를 입고 뉴욕의 택시에서 우아하게 내려 티파니의 진열장을 들여다보며 종이봉투에 담긴 아침을 먹는다. 2006년 12월, 헵번이 입었던 바로 그 작은 드레스(오른쪽)는 런던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41만 파운드에 팔려, 영화에서 입었던 드레스 중 가장 비싼 그리고 가장 유명한 드레스가 되었다. 지방시가 디자인한 그 드레스는 영원한 스타일의 아이콘으로서 헵번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헵번은 패션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의 뮤즈였다. 그는 「사브리나」와 「퍼니 페이스」, 「샤레이드」, 「백만 달러의 사랑」 등 헵번의 가장 유명한 영화에서 그녀의 의상을 담당했다. 사이즈 6의 바닥까지 끌리는 검정 칵테일 드레스는 몸에 딱 맞는 몸통 부분과 등이 깊이 파이고 허벅지까지 트임이 있다. 헵번의 진정한 박애활동을 생각해보면 그 드레스의 판매액이 인도의 가난한 이들을 돕는 자선단체인 시티 오브 조이 에이드에 보내진 것은 아주 적절한 일이다. 항상 겸손했던 헵번은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나의 외양은 쉽게 따라할 수 있어요. 여자들이라면 머리카락을 틀어 올리고 커다란 선글라스를 사서 쓰고 작은 민소매 드레스만 입으면 오드리 헵번처럼 보일 수 있답니다." 그녀의 첫 번째 히트 영화 「로마의 휴일(1953)」 이후 전 세계 수백만의 여성들은 헵번처럼 보이고 싶어 했고 그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내가 이런 얼굴을 가지고 영화에 출연하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해봤습니다." 오드리 헵번 [Audrey Hepburn] (501 영화배우, 2008. 8. 29., 스티븐 제이 슈나이더, 정지인)